《모욕》과 《평화》

우리 학교에 다니는 어느 녀학생의 토론내용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난달(7월)11일에 도꾜에서 열린 신포쥼에서의 이야기이다. 심포쥼의 제목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일조국교정상화》였다. 주최는 《긴급심포쥼실행위원회》라 되여있었지만 실체는 지난 2000년 7월에 결성된 일조국교족친국민협회이다.

제가 거기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것이였다. 올해초에 아가시서점(明石書店)에서 《북조선을 알기 위한 51장》이라는 소책자가 출간되였는바 저는 거기에 집필진으로 참가하여 주로는 경제분야를 담당하였다. 그러더니 몇달후에 편자로부터 련락이 왔다. 소책자를 가지고 학습회를 조직하기에 꼭 강사로 출연해달라는 요청이였다. 그래서 조직된 학습회가 심포쥼에 앞선 6월말에 있었다. 편자가 일조국교족친국민협회와 가깝게 지내고있는 사람이여서 그래서 심포쥼에 관한 안내를 받았던것이다.

학습회에서 저는 조국 인민들의 생활모습을 주로 이야기하였다. 일본에서는 공화국의 인권문제를 놓고 오만가지 보도들이 나와있으나 초보적인 인식이 결여되여있다는데로부터 문제를 제기하여 조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가정을 유지하고있는가 등등의 내용들을 전개하였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였다고 생각한다. . 일본의 대공화국여론이 날로 악화되여가고있는 속에서 이를 긍정적인 방향에 가져가게끔 책을 출판할수 있었으며 또한 독자들과의 대화마당이 마련되여 직접 영향을 줄수 있었던데 대해 적지 않은 만족감도 느꼈다.

그런데 제가 해오던 사업이 과연 무엇이 였던가를 가슴속으로부터 절감하지 않을수 없는 충격을 며칠후의 심포쥼에서 받았다. 심포쥼에서는 우리 나라의 미싸일발사문제와 관련한 기조발언들에 이어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어느 녀학생이 출현하여 토론을 하였다.

심포쥼 개최의 7월 11일에 우연히 18살이 되였다는 그 녀학생은 생일을 맞으면서 하나의 단어를 새로 외웠다고 한다. 《모욕》이라는 말이다.

미싸일발사문제이후 통학길에서 녀학생은 일부에 존재하는 량식이 없는 일본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받는 기회가 몇번 있었다. 어느날에는 렬차에 타다가 어떤 일본남학생한테서 《북조선사람이다, 미싸일을 가지고있으니 위험하니까 가까이 오지 마라》 등등의 《모욕》을 받았다고 한다. 녀학생은 무서워서 그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그저 참을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차후 그는 곰곰히 생각하였다고 한다. 《내가 조선사람이라고 느낄 때란.》 치마저고리를 입을 때도 아니고 우리 말을 이야기할 때도 아니다. 《모욕》을 받았을 때 그는 조선사람으로서의 느낌이 가장 강해진다고 한다. 심포쥼 참가자들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나도 그 한사람이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로서 후배들이 그와 같은 모욕을 받고있는데 대해 차마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졸업후에 사회에 나가면서 제가 하고있는 과학의 탐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던지를 생각하니 하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과학의 연구사업이란 그저 진실탐구가 아니다. 탐구를 통해 여론에 깨우쳐주고 행복한 환경을 꾸리는데 적극 기여해야 될것이다. 이날 심포쥼을 조직한 일조국교족친국민협회의 발기인속에 일본의 여러 저명학자들이 관여하고있는것도 그때문이다.그 속에는 제가 존경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녀학생의 호소는 계속된다. 《올해 생일에 〈모욕〉이라는 단어를 외운 저는 래년에는 19살이 된다. 그때에는 여기 심포쥼의 간판에 써있는 〈평화〉라는 단어를 꼭 외우고싶다.》

사람마다 단어의 의미는 각이하게 되새긴다. 나는 앞으로 《모욕》과 《평화》라는 단어와 접할 때 마다 그날의 녀학생의 모습을 떠올려볼것이다.

래년에는 반드시 그에게 《평화》라는 단어를 안겨주고싶다. 그의 선배로서, 또한 사회과학자로서.(문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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